강화 전등사 방문기 20250608
전등사 강화에 있는 고려시대의 최고사찰 접근성이 좋고 주변 풍광이 아름다운 사찰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던고 그전등사를 오랜만에 찾게 되었다 양도초등학교에서 전등사까지 거리는 약 9km이니 초등학생 신분으로 전등사까지 당시 비포장도로였던 전등사의 수학여행은 큰 볼거리 여해이다
아침 9시경에 출발하여 전등사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이내 전등사 경내를 관람하고 대웅전 뒷편 지금의 정족사고가 있는 주변에서 가지고 간 점심을 먹고 노래자랑 보물 찾기를 햬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전등사를 집사람과 둘이 집에서 차로 10이 채 안 걸리는 전등사 당시에는 불교 지식이 전혀 없고 대웅전 처마밑에 보를 쳐 받들고 있는 대웅전 공이 에 술과 대웅전 내부의 화려한 장식들이 참 신기하기만 했다
전등사는 강화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사찰로서 사찰의 대웅전 규모만 보더라도 당대 이곳 길상면 온수리 가 소재하는 전등사는 대단한 규모와 오랜 역사적 건물로 지정 되었던 전등사가 아닌가 자금이야 차편이 좋아 10분 내로 도착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교통이 전무하고 가끔 지나는 트럭만 만나도 운수 좋은 날이기도 했다
강화 전등사 건물은 조선시대 대웅전이 신축 되었다 하나 그 웅대한 건물에서 품어있는 대웅보전의 아름다운 건축미를 관람하기 좋은 곳이다 그리고 최근에 조성된 무설전은 현실에 맞게 기도하고 설법하는 장소이고 그 내부의 하얀색 부처님과 주변 보살들이 너무 깨끗하고 청결하고 무설법당내부가 너무 아름다운 조명과 더불어 안 아면 있어도 기도 절로 될 것 갗은 좋은 장소였다
그리고 방문하던날 동문에서 대웅전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우측 조금 떨어진 곳에 어떤 건축물이 들어서는지
전기대패소리가 시끄럽고 요란하다 물론 전등사 경내에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 좋지만 그 터에 자라나던 나무들이 없어진다는 것이 자연을 해치는 일이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사람들이 편하자고 이렇게 자연은 조금씻 소멸되는 것이다
전등사의 산신각에 쌀보시를 하고 내려오면서 예전 초등시절에 명부전 문입구에 나한상에 칼을 들고 찌를 듯이
내려다 보이는 큰 칼과 나한 눈동자가 유독 커다랗게 조각 되어 약간은 무서움이 있던 곳인데 65년이 지난 지금은 아무런 감각이 없이 그저 나무 조각상으로만 다가온다는 것이 새삼 나를 의심하게 한다
이 글을 쓰면서 전등사에 대한 것을 좀 더 알고 싶어 인터넷 배가 사전에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전등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381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라고 했으나 1282년 충렬왕의 비인 정화공주가 승려 인기를 중국 송나라에 보내 대장경을 가져오게 하고, 이 대장경과 함께 옥등을 이 절에 헌납한 후로 전등사라 불렀다고 한다. 1605, 1614년에 일어난 화재로 건물들이 완전히 소실되었고, 그다음 해 4월부터 재건하기 시작해 1621년 2월 완성되었다. 1707년 사각을 고쳐 짓고 별관인 취향당을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경내에는 대웅전(보물 제178호)·약사전(보물 제179호)·명부전·삼성각·향로각·적묵당·범종각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중국 북송시대의 범종(보물 제393호)과 조선시대의 법화경판(1544)이 전해지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중창기문(重創記文)에는 381년(소수림왕 11)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한 절로, 1266년(원종 7)에 중창된 이래 3, 4차례의 중수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현존하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확실하게 단정짓기는 어렵다.
전등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 보물 제178호. 1916년 해체·수리할 때 발견된 〈양간록 樣間錄〉에 따르면 이 건물은 1605년에 일어난 화재로 일부가 불타버린 뒤 1614년 12월 또다시 불이 나 완전히 소실된 것을 당시 사승(寺僧)이었던 지경이 이듬해에 재건하기 시작하여 1621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한편 1855년(철종 6) 화주(化主) 규형(奎瑩)에 의해 대웅전이 중건되었다는 〈전등본말 사지 傳燈本末寺誌〉의 기록과 지붕을 덮었던 기와의 명문 중에 1876년(고종 13) 효월화주(孝月化主)가 대웅전과 약사전의 지붕을 고쳤다는 기록이 있어 이 건물의 건립연대는 조선 중기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자연석으로 쌓은 높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