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아침에 - 참혹한 광경이 곳곳에서 연출
오늘 지인 이선희님이 카톡으로 &&& 주일아침에 - 참혹한 광경이 곳곳에서 연출 &&&라는
글을 주셔서 사진첨부 정리 작은별밭과 함께 합니다
주일아침에 - 참혹한 광경이 곳곳에서 연출되었습니다.
샬롬! 어제 주말 밤은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유월 들어 첫 번째로 맞이하는 주일 아침입니다. 현충일을 이틀 앞둔 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은혜와 감사로 주일을 보내시되,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들의 나라사랑을 기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조국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겠는지?’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져봤으면 합니다. 아무쪼록, 아름답고 행복한 주일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탈북자 관련 프로를 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탈북자들이 그토록 원하던 대한민국의 인천공항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뻐하면서 좋아하기보다는, 오히려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북에서 한국의 국정원에 대한 악선전을 수없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히 두려워하면서 떨고 있는 그들에게 국정원 직원들이 이렇게 말한다죠? “잘 오셨습니다. 이젠 안심하셔도 됩니다. 여러분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굳이 잘못을 따진다면, 북한에서 태어난 죄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그 순간, 탈북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눈물을 펑펑 쏟아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음 글을 읽어보시면, 단지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치르고 있는 북녘동포들의 고통과 시련이 너무 크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어머니는 평생 쉬지 않고 기도하신 분입니다. 어머니가 기도하시면, 저는 망을 봤습니다. 3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어머니 기도시간에 망을 봤습니다. 고난의 행군 때에는, 저의 다섯 살 난 셋째 딸이 저 대신 망을 봤습니다. 저는 먹고살기 위해서 밤낮없이 장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딸이 3년, 모녀가 대를 이어 40년 동안 망을 봤습니다.
어머니는 78세에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마지막 기도를 마치시고 조용히 호흡을 멈추셨을 때, 열네 살 때부터 앓았던 저의 간질증세가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딸의 병이 낫게 해달라고, 어머니는 30여 년이 넘도록 눈물을 쏟으면서 기도하셨는데, 어머니의 그 기도를 주께서 응답해주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혀가 굳어 한 마디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어눌한 발음으로 힘겹게 저에게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기도 쉬지 말거라. 어렵고 힘들 때, 가족이 아플 때, 하나님께 기도 많이 하거라. 자식들은 하나님이 네게 주신 재산이다. 이 재산을 항상 잘 간직하거라.” 어머니의 기도, 그리고 어머니가 남기신 유언은, 사방이 칠흑으로 덮여있는 상황 속에서도 빛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방향을 잃은 저의 마음을 잡아주는 ‘소리’였습니다.
이한나 집사는 22살에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의 나이는 27살이었습니다. 1968년, 두 사람은 결혼해서 부부가 되었습니다. 딸 셋과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그 중에서 네 아들을 잃었습니다. 첫아들은 태어난 지 7일 만에 죽었습니다. 두 번째 아들은 선천성 심장판막증으로 4개월 만에 죽었습니다. 세 번째 아들은 임신 7개월 때 조산했는데, 낳은 지 하루 만에 죽었습니다. 네 번째 아들은 3살 되던 해에 고압선에 감전되어 죽었습니다. 막 입을 열어 ‘엄마’를 찾고 ‘아빠’를 부르던 아이였습니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들의 무덤에서 통곡했습니다. 남편도 이리저리 거리를 헤매면서 아들을 이름을 목 놓아 불렀습니다. 그녀는 흐느낌을 견딜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그녀가 막내아들을 임신했을 무렵,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경제난이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임신 중에도 먹지 못한 그녀는 허기짐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고여 드는 서러움을 꾹꾹 눌러야 했습니다. 결국 막내아들을 8개월 만에 조산했습니다. 살 가망이 없는 손주를 안고,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짠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제발 제 손주 살려주세요.”하고 기도했습니다. 한 여인의 간절한 통곡의 기도를 주님이 받으셨습니다. 아이는 한 달 후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었습니다.
1994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습니다. 더 이상 갈 데 없는 괴로움이 북녘 땅을 덮쳤습니다. 삶은 너덜너덜해졌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 곳곳에서 연출되었습니다. 살고자 이 악물고 버텨도, 삶과 죽음은 오버랩 되었습니다. 극심한 기아로 약 300만 명이 굶어죽었습니다. 그녀의 가족도 극심한 기근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했습니다.(출처; 빛과 소금, 이승연 / 빛과 소금 편집장)
[그 시련으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벧전4:13,현대인)]